피맛골이 곧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에 생겨 오늘까지 왔으니 물리적 시간으로 600년 역사를 향하다 없어지는 것이다. 서민들에게 너무나 소중했던 골목, 오늘을 살아가는 40대 이상의 남자들이 각자 성장소설 몇 권을 써도 부족할 만큼 수많은 추억의 흔적이 살아있는 곳,
1만원만 들고 들어가면 장정 네 명이 술에 뻗어서 나와도 될 만큼 겁 없이 싸기만 했던 대박 골목. 이곳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지나간 시간의 피맛골을 걷다
80년대 피맛골은 광화문에서 종로6가까지 이어지는 환상의 골목이었다. 광화문에서 걷기 시작하면 빈대떡과 굴전에 막걸리를 팔던 열차집을 비롯, 대림 생선구이, 삼성집 족발, 함흥집을 지나면 서린낙지가 나왔다. 이 골목에 들어서면 지짐 냄새가 골목 전체를 진동, 도무지 그냥 지나칠 수 없을 정도로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고향의 향기였다. 서린낙지에 들어가면 목포에서 올라온 싱싱한 낙지를 다진 마늘과 고춧가루, 그리고 온갖 양념에 뒤범벅을 만들어 볶아낸 초강력 매운맛의 낙지와 콩나물국, 큼직한 단무지가 테이블 위에 올라가 있고, 사람들은 얼굴이 불콰해져서는 소주를 들이키곤 했었다. 기본 안주는 낙지볶음과 조개탕.
서린낙지 앞길을 건너면 무교동 번화가가 나왔다. 왼쪽으로는 무교동 낙지집의 또 다른 대표주자였던 실비집이 있었고, 피맛골에는 광화문 무교동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을 기다리는 이른바 2라운드 카페들, 찻집, 맥주집들이 즐비했다. 그 가운데 가난한 문인의 뒷바라지를 하던 고운 여인네가 운영하던 찻집에는 광화문 일대 언론사의 문학 담당 기자들의 음흉한 발길이 끊이질 알았다.
청진동 골목은 피맛골 새벽의 정점에 있었다. 청진옥과 흥진옥에는 하루 종일 해장국을 찾는 손님들로 들끓었다. 특히 새벽이면 무교동과 종로 일대의 고고장에서 밤새 흔들어대던 청춘남녀가 끈적한 여인숙 대신 뼈다귀 해장국으로 뜨거운 심신을 풀어버리던 곳이다.
종각사거리의 신신백화점과 화신백화점을 지나면 YMCA 뒷골목이 있다. 그 골목에는 제일학원, 경복학원, 대일학원, 등용문 등 재수 및 단과반 학원이 있었고, 해괴하게도 학원 바로 옆에는 국일관 나이트클럽이 있었다. 클럽 앞에는 예의 김두환의 후예를 자처하는 검은 양복 건달들이 도끼 빗을 뒷주머니에서 꺼내 올백 스타일을 다듬곤 했다. 국일관을 지나면 당시 대학생, 재수생, 직장인들의 저녁 시간을 책임져 주었던 피맛골 이면수 구간이 나왔다. 이곳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이면수 한 마리, 파전 한 접시에 막걸리와 두꺼비 소주 한 병을 시켰다. 당시 이면수 한 마리 가격은 500원에서 700원이었다. 파전, 막걸리, 소주 한 병 값도 비슷했다. 두 사람이 5000원을 갖고 들어가면 완전히 취해서도 1000원쯤 남기고 나올 수 있었다. 구간 끝에 있는 전봇대집은, 실내에 전봇대가 서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전봇대집을 나오면 인사동으로 이어지는 길이 나왔다. 길을 건너 낙원상가 아래로 가면 파고다공원(지금은 탑골) 돌담 뒤로 순대국집이 줄줄이 있었고, 파고다극장 앞 골목에서 단성사 극장 앞까지는 여관과 쪽방, 그리고 음악다방이 즐비했다. 음악 다방에 들어가면 장발 DJ가 ‘리퀘스트 뮤직’을 틀어주며 한껏 폼을 잡았다. 당시 유행했던 가수는 비틀즈, 비지스, 보니엠, 빌리조엘, 티나 터너, 조용필 등이었다.
단성사 옆 골목부터 종로5가 구간까지는 기름기 번지르르한 돼지갈비 골목이었다. 피맛골 가운데 이 골목과, 닭갈비탕을 팔던 동대문까지의 구간이 가장 럭셔리 한 고급 골목이었다. 이 구간이 피맛골의 명품 골목이 된 것은 종로 세운상가, 동대문시장의 돈이 쏠쏠하게 흘러 들어온 덕이다. 당시 세운상가와 동대문시장은 우리나라 최고의 상권이었고, 당시 동대문 시장에서 원단 장사, 실 장사, 이불장사, 단추장사를 했던 사람들은 전부 현금 부자들이었다.
80년대까지의 피맛골은, 비록 넉넉지는 않았지만 넘치는 인정 속에서 적절한 이윤을 보던 술집과 지갑이 충만했으며, 아버지 혼자 벌어 삼대가 함께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오늘의 피맛골을 찾다
2008년 11월, 피맛골을 서너 번 서성였다. 100년도 넘은 식당 청진옥이 있던 자리에는 공사를 위한 안전 담장이 설치되어 있다. 청진옥 앞에 언제나 앉아있던 주차서비스 아저씨들도, 일본인 관광객들을 상대로 메이드인 차이나 한국토산품을 팔던 할아버지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길 건너 흥진옥은 여전히 그 자리에 문을 열고 있다. 흥진옥 앞으로 해서 종로구청을 지나 KT 뒷길로 들어서면, 30년 넘게 생태탕과 간장게장의 진미를 보여주었던 안성또순이집 일대도 공사장이 되어버렸다. 지중해참치집도 이사했고, 이남장은 이전안내문조차 붙어있지 않다. 일대 직장인들의 아침 식사와 오후 간식 터로 인기를 끌었던 세진분식도 문을 닫았다. 세진 분식 골목 안쪽의 이만리, 이조 등은 영업 중이다.
모두 띄엄띄엄 있는 상황이다. 줄줄이 자리를 잡고 있는 피맛골의 마지막 터줏대감들은 열 여섯 집 들 뿐이다. 그나마 재개발이 확정된 지역은 서둘러 이전을 준비하고 있고, 건물 매각이 결정되지 않아 일정이 잡히지 않은 집들도 무언가 비장한 분위기이다.
실제로 문을 열고 들어가 이전 관련 질문을 하면 조금은 냉랭한 반응이 나오곤 했다. 실제로 이사 계획이 없을 수도 있고, 또는 기자를 재개발 시행회사의 정보원쯤으로 생각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2008년 12월 피맛골 맛집
경원집